독서기록/미니멀라이프
소비하지 않는 소비자들('디컨슈머')
굿띵쓰
2024. 2. 17. 05:31
인간이 모두의 욕구와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택할 수 있는 별개의 두 가지 경로가 있는 듯 보였다. 하나는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더 적게 원하는 것이었다. 살린스는 주콴시와 다른 수렵, 채립 문화가 '부요함 없는 풍요', 즉 필요가 적고 얼마 없는 필요도 주변 환경에서 쉽게 충족할 수 있는 생활방식을 개발했다고 말했다.("나는 적은 것만을 원함으로써 부유해진다"라고 말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주콴시의 선례를 따른 것이었다.) 수렵, 채집인이 먹을거리와 그 밖의 다른 물질을 바로 구할 수 있는 양 이상으로 축적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한 살린스는 "제 능력을 다 발휘하지 않는다는 것의 숨은 의미"를 고민해다. 그리고 어쩌면 그러한 자제력이, 끊임없이 더 많은 돈과 소유물을 좇는 것보다 더 충만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가져오는 것은 아닐지 물었다.(p.14)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은 책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소유와 소비와 관련된 다양한 개념과 현상을 다시 되짚어볼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이 준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이 소비가 멈춘 세계에 대한 '가상 보고' 정도라고 지칭할 수 있다고 말한다. 프롤로그를 비롯하여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을 기록하고자 한다.
소비나 물질소유에 관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 보이고, 이를 충족할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으로는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유하는 것, 두 번째 방법은 물질에 대한 욕구를 축소하는 것이라고 한다. 잘 되지는 않지만 사회적, 환경적, 개인적 측면을 고려했을 때, 아무래도 후자의 방법을 추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여 보인다. 욕망의 크기를 조절하여 달성할 수 있는 부요하지는 않지만 풍요로운 삶은 축복같아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끌어모아 '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가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일하고, 소비하며 살아가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의 최대 덕목인 것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풍토가 당연해진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제력을 통해 온 힘을 다 하지는 않는 자세'를 엿보는 것은 어쩐지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다. 어쩌면 더 충만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는 방법은 더 단순하며, 우리 옆에 더 가까이 놓여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반소비자는 무엇을 소비하고 싶고 소비하기 싫은지를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으며, 광고와 유행에 덜 휘둘리고, 소비에 발목이 묶였다고 느끼거나 소비를 도피 수단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낮다. "제가 늘 금욕적으로 사는 건 아니에요."루어스가 말했다. "그보다는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늘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죠."(p.310)
"이 가치에 완전히 빠져 있었기 때문에 아예 부자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그가 말했다. "살면서 큰돈을 벌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택이었죠."
간소한 삶을 사는 이들은 보통 자신이 케인스가 말한 절대적 필요의 충족이라는 '경제적 문제'를 해결했다고 느낀다. 그들의 방법은 절대적 필요를 줄이는 것이다. 현재 캐플로는 침엽수가 빽빽이 들어선 가파른 언덕에 자리한 동네에 산다. 여기서 시애틀은 현대 메트로폴리스라기 보다는 나무 위에 지은 집들의 도시처럼 느껴진다. 캐플로가 남편과 함께 사는 집(전에는 딸과 함께 살았다)은 70제곱미터로, 이는 오늘날 미국에서 지어지는 일반적인 3분의 1 크기이며 아파트 평균보다도 더 작다. 워싱턴대학교에서 미술사르 가르친다 은퇴한 캐플로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중고가 아닌 가구는 하나도 구매한 적이 없다. 치근 사고로 고장이 나기 전까지 25년 된 스바루를 몰았으며, 주행거리는 전국 평군의 4분의 1도 되지 않았다. 캐플로는 식기세척기를 소유한 적이 없다.(이것이 간소한 삶을 사는 이들의 기준점인 것 같다). 20년 넘게 버스로 통근했고, 책은 대부분 도서관에서 빌려 보며, 양말과 속옷, 신발 외에는 새 옷을 좀처럼 사지 않는다. "전 예쁜 옷을 정말로 좋아해요." 캐플로가 말했다. "하지만 예쁜 옷이 엄청 많은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아요."(p.311)
자발적으로 간소한 삶을 실천하며 살면서 큰 돈을 벌지 않겠다는 것이 일종의 의지가 개입된 선택일 수 있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필요하거나 원하는 것이 많아지면 인간은 대체로 피로해지고 불행해지는 것 같다. 반소비자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물질의 양과 종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이것을 토대로 적극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필요를 축소하고 풍성하고 고요한 삶을 살아간다. 책의 예시로 나와 있는 캐플로의 생활 방식에 비추어 보면 나는 캐플로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좋은 것들을 가진 사람인 것 같다. 간소한 삶, 물질이 축소된 삶 그러나 풍요로움이 있는 삶을 온 맘 다해 동경하는 요즘이다. 살면서 큰 돈을 벌지 않겠다는 선택, 너무 큰 집에는 살지 않겠다는 선택, 새 차는 타지 않겠다는 선택 등 필수재에 대한 욕망을 축소하는것은 자신의 적극적인 의지가 개입된 선택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삶은 결국은 물질에 대한 '포기/축소'보다는 풍요로운 삶을 향한 '확장'에 더 가깝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