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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를 거치지 않은 충족('0원으로 사는 삶')독서기록/미니멀라이프 2024. 2. 7. 08:490원으로 사는 삶(돈 없이) 어디서 자지? (돈 없이) 무엇을 먹지? (돈 없이) 어떻게 가지? 살인적인 방세와 높은 물가로 손꼽히는 영국 런던. 이 책은 런던에서 생활하다 돈을 쓰지 않고 살겠다는 저자의 결심에서 시작한다. 저자가 처음부터 무지출이라는 행위에 어떤 중요한 의미를 담아 영향력을 미치고자 0원살이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매일같이 존재의 이유를 증명하고자 열심히 일하고, 인정받기 위해 애쓰고,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을 이어가고, 사랑받고 관심받으려 치장하고 소비하는 사이, 불안은 커지고 삶은 노동과 소비의 굴레에 철저히 맞춰졌다. 숨을 쉬며 방안에 누워있는 순간에도 집세가 새어나간다. 문득, 저자는 스스로의 인생과 시간, 존재가 ‘돈을 벌기 위해’쓰이고 있음을 알아챘다. 돈을 벌지 않아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돈이 없어도 살 방법을 찾기 위해, 살아 있는 그 자체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고 싶어 저자는 결심했다. 돈을 쓰지 않기로. 저자는 영국 웨일스에 있는 자급자족이 원칙인 유기농 농장 ‘올드 채플 팜’부터 남서부 서머싯의 친환경 공동체 ‘팅커스 버블’, 자전거의 도시 브리스틀의 자전거 수리 전문 카페 ‘롤 포 더 소울’, 중부 우스터를 지나 런던에 돌아왔다. 노동력 교환 커뮤니티에 장기간 머물 수도 있었지만, 저자는 단순한 생존에서 나아가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기로 한다. 도시에서도 0원살이를 이어가기로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트, 카라반에 사는 모바일 리빙부터 버려진 창고나 공장을 거처로 삼는 웨어하우스 리빙, 빈 건물을 점거하는 스퀏팅까지. 대안 주거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삶의 방식과 거주 방법 자체를 변화시키고자 실천한다.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다양한 주거 방식 자체가 주거 문제에 대한 저항이 되는 셈이다. 영국을 떠나 독일과 폴란드, 리투아니아에서도 여정은 이어진다. 헝가리에서는 히피들과 함께 지내며 생존과 사랑을 초월한 세계를 만난다. 세르비아에서 난민들을 만나고, 마케도니아, 그리스를 거쳐 저자는 평화의 열쇠를 찾기 위한 흐름에 자신을 맡긴다.
- 저자
- 박정미
- 출판
- 들녘
- 출판일
- 2022.10.28
돈을 사용하지 않고 살아보려던 이유는 그저 사용할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p.19)
'뭐야, 숨이 돈이야?'
오싹함이 분노로 바뀌었다. 그냥 이렇게 다른 것 바라지 않고 숨만 쉬면서 살겠다는데 돈이 없으면 그것마저 안 되는 거야? 내 삶이, 인생이, 시간이, 나의 존재가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쓰이는 것이 당연한 거야? 아니, 그렇지 않다. 내 인생은 돈이 없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 나는 오직 돈을 벌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그 자체로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돈이 없어도 살아갈 방법이 있지 않을까? 돈을 벌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리고 이내 곧 아주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답이 떠올랐다.
'돈을 쓰지 않으면 되잖아!'(p.21)
'소비'로 '생존을 위해 필요한 세 가지'를 해결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돈'을 거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필요한 것-돈-충족]이라는 고리에서 '돈'을 없애고 [필요한 것-충족]의 직접적 해결로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p.23)저자는 물가가 높은 영국에서 생활하던 중, 돈을 통하지 않고서는 생존이 불가능한 시스템에 의문을 품고 '0원 살이'의 여정을 시작한다. 돈이 없어서 돈을 사용하지 않고 살아보기로 결심했다는 저자의 단순하지만 확고한 선택이 부럽게 느껴지도 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그 '돈'을 벌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투입하고 여러가지를 희생해야 한다. 돈벌이를 시작하기까지의 교육기간 및 비용, 깨어있는 낮 동안의 대부분의 시간, 신체적/심리적 에너지 소모 등 사람이 겪는 여러가지 고통은 '돈을 벌어야만 하는 삶' 관련되어 발생 되는 것 같다.
필요한 것을 돈을 통해 충족하지 않고 여러 대안적인 방법들을 통해 충족하는 저자의 여정이 신박하게 다가왔다. 대안적인 방법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했고, 쉽지만은 않은 그 여정들에 적응해 가며 자신이 생각한 삶의 모습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저자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나 역시 비슷하게나마 돈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고 살아가는 기간을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힘들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큰 문제 없었잖아요. 자전거는 몇 군데만 손보면 되겠어요. 내 생각에 당신은 지금 다른 자전거가 필요한 게 아니라 그냥 원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종종 '원하는 것'을 '필요한 것'으로 착각하기도 해요. 다시 잘 생각해봐요. 정말 '필요한 것'인지 말이에요."(p.66)
'원하는 것은 없어도 필요한 것은 다 있다'라는 말이 굉장이 와닿았다. 우리는 계속 구매에 대한 필요성을 만들어 내며 자꾸 무엇인가를 사려고 하지만, 사실 정말 필요한 것은 이미 다 가지고 있다. 다른 디자인과 더 좋은 성능을 가진 '원하는 물건들'이 자꾸 생겨날 뿐. 어쩌면 필수품과 사치품의 관한 기준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도식에서 크게 다른 방향으로 재조정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 외 인상 깊었던 부분은 다음과 같다.
메이는 말했다. 사람들은 '정치적'이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하지만 사람들이 하는 대부분의 활동은 정치적이라고. 텔레비전을 보는 것, 저가 쇼핑센터인 프라이마크에서 옷을 사는 것,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사 먹고 테스코에서 장을 보는 것. 이 모든 소비는 투표보다도 직접적으로 사회와 권력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행위라는 것이다.
우리가 '무지의 노동자'로 살아갈 때 시스템은 우리에게 권력을 휘두른다. 반면 우리가 '의식 있는 소비자'가 되면 시스템은 우리를 두려워한다. 진짜 혁명은 화염병을 던지며 시위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 하지 않는 생활 습관에서 시작된다.(p.169)너무 당연하게 여겨지는 소비 생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주는 책이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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